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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마을의 지명유래

HOME > 광진의 역사와 문화 > 광진구마을의 지명유래

중곡동
아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동명의 유래는 위치가 능동과 면목동 중간에 있으므로, 간뎃말 또는 한자음으로 중곡리라 하였음.
능동
어린이 대공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비, 순명황후 민씨 유릉이 있었으므로 능말, 능리라 하였고, 마장의 안쪽에 있어 안말, 장안말, 또는 한자음으로 내리(內里), 장내리(場內里)라 하였음.
구의동
아차산 기슭에서 한강변에 이르는 긴 지형으로 자연촌락 구정동(九井洞)의 九자와 산의동(山宜洞)의 宜자를 따서 구의리라 하던 것이 구의동이 됨.
광장동
느티나무는 모양이 단정하고 수명이 길어 정자목으로서 우리겨레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하고 있으며, 특히 화양동 소재 느티나무는 수령 700년 가량의 노거수로 서울특별시 지방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그 상징성이 높으며 우리구의 무궁한 역사와 늠름한 기상을 상징함.
자양동
잠실대교 북쪽 좌우편 한강변에 위치하고 조선시대 국가에서 말 1,000 마리를 기르면 용마(龍馬)가 난다하여 자마(雌馬), 즉 암말을 길렀기 때문에 자마장이라 칭하였고 동명을 자마장리라 부르다가 자양동으로 전음(轉音)됨.
노유동
제방이 없을 때 잔디밭인 이 일대가 가을에 누렇게 변하여, 누런 잔디산이라 불리다가 누런산으로 다시 노룬산으로 전음됨.
풍류객이 늙어감을 서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곳이라 어느 때부터인가 노유산으로 전하여짐.
화양동
조선시대 화양정이 세워져 있어서 유래. 일설에는 조선초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로 귀양갈 때 이곳에서 송씨 부인과 이별하면서 회행하기를 기원했다 하여 회행리라고 호칭했다는 설도 있으며 화양정을 회행정(回行亭)이라고도 했다.
모진동
건국대학교가 대부분을 점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전곳평의 양마장(養馬場)지역으로 가끔 방목된 말이 실족하여 건국대학교 정문근처 수렁에 빠져 죽으면 이곳 여인들이 말을 건져내어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하여 인근 주민들이 이 여인들을 모진여인이라 부르던 것이 모진동네로 바뀌었다는 유래로 모진동이라 부르게 됨.